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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어제 일기장에 적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ㆍ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일기를 쓴 오후 6시. 나는 간단하게 일기를 쓴 다음 평소처럼 브런치 앱에 글을 복붙 해서 맞춤법 검사를 돌려 띄어쓰기와 틀린 글자를 수정하고 있었다.

ㆍ그런데 반쯤 고치다가 남편에게 "우리도 가족사진을 찍는 거야!!!"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ㆍ소파에 누워서 폰을 보던 남편과 가족사진을 매년 찍는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을 했고, 몇 년 전부터 점찍어 둔 스튜디오에 불시에 전화했다.

ㆍ오픈 3주년 행사 중이라 사진 촬영비가 많이 내렸는데 그럼 가족사진 가격도 내렸나요? 하고 물어보니 평소보다 5만 원 내렸다. 촬영이 비는 날은 당장 내일 아침 10시. 우리는 잠깐 몇 초 생각해보다가 일단 예약했다.

ㆍ아파트 앞 미용실에 예약하려고 전화하니 이미 full인 상태. 내일 가족사진 촬영하려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한마디 하니 그럼 8시 40분에 오라고 하신다. 아마도 미용실 문 닫기 전 마지막 손님으로 우리 가족을 받으시는 듯.

ㆍ그때부터 남편은 촬영에 입을 흰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다림질하고, 나는 첫째 딸과 목욕을 했다. 좀 더 늦은 시간이었다면 아침에 미용실을 들렀다가 갈 텐데 첫 타임이라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저녁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아침에 간단히 만지고 바로 출발하려 했다.

ㆍ예상대로 아침 8시 넘어서 일어났고 간단한 요기만 채우고 짐을 꾸린 뒤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집에서 거리가 20분 넘게 걸리는 곳이다. 가는 동안 정말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게 일사천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어제 저녁에 일기를 쓰며 생각한 건데 다음날 바로 아침에 사진을 찍다니.

ㆍ땡볕 더위.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춤을 추는 가운데 불법 주정차로 가득한 어느 한적한 동네에 우리 가족은 시간보다 5분 늦게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ㆍ이 스튜디오의 특징은 온통 화이트톤이라는 점. 그래서 여러 성장앨범을 계약한 사람들이 지역 카페에 후기 사진을 올리면 하얀 바탕에 사람이 환하게 웃는 사진으로 항상 눈길을 끌었다. 댓글란에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그런 곳.

ㆍ엘리베이터 2층에서 내려서니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둘째 딸을 안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천장, 하얀 침대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4면이 화이트 색인 공간이 보인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에는 여기저기 얼룩들이 보인다.

ㆍ문 앞에 마련되어 있는 대기석에는 우리가 흔히 집에서 쓰는 소파보다 2배 정도는 앉는 자리가 넓고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 아기를 내려놓고 설명을 듣는다. 첫째 딸은 4살이고 둘째 딸은 백일 된 아기. 가족사진이 전문인 스튜디오답게 하얀 드레스 종류는 많았다.

ㆍ우리가 고를 것도 없이 탈의실에 들어서자, 스텝분이 척척 의상을 꺼내더니 이걸로 입으라고 한다. 남편은 첫째 딸 드레스를 둘러보고 선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다른 드레스들을 쭉 둘러보다가 가슴 윗선부터 주름진 치맛자락이 늘어뜨려진 하얀 드레스를 꺼내어 든다. 이걸 입히는 게 더 이쁘지 않겠냐고 내게 묻기에 스텝분에게 물어보는 게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스텝이 권해준 첫째의 드레스는 상체에 물결무늬로 작은 레이스가 가로로 겹겹이 있고 밑으로는 자연스럽게 무릎까지 레이스가 펼쳐지는 드레스였다.

ㆍ가족 모두가 비슷한 느낌으로 입어야 하기에 혼자서 튀는 드레스를 입는 건 맞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남편은 못내 아쉬운지 그 드레스를 3번도 넘게 드레스룸에서 걸었다 내렸다 하였다. 보다 못한 내가 프로가 권해주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다독였다.

ㆍ그 뒤 첫째 딸 머리를 삐삐 모양으로 묶고 하얀 리본핀으로 장식을 하니 드레스와 잘 어울렸다. 백일 된 둘째는 아직 낯가림을 하는 시기가 아니라서 울지도 않고 준비되어 있는 아기침대에 누워서 치발기를 연신 씹어대고 있었다.
 
ㆍ촬영이 시작되고 열심히 웃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첫째가 계속 움직이려고 해서 재차 스텝분이 앞에서 애를 썼다. 비눗방울도 불고, 인형극도 하고, 동영상도 틀었다. 하얀 배경으로 3 포즈 정도를 찍은 다음 옆쪽에 있는 하얀 창문에 흰 커튼이 있는 장소로 이동해서 찍었다. 남편과 나의 표정이 딱딱했는지 이 콘셉트에서는 부모님들이 편하게 웃으시길 바란다고 하셨다.

ㆍ플래시가 백번도 넘게 터지고 나서야 촬영이 끝났다. 나름대로 힘들었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촬영 원본은 부모님들의 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중에 3장의 사진을 선택하면 그걸 보정해주고, 그중 한 장을 A4 사이즈의 액자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ㆍ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메일이 도착했고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사진을 한 장씩 보니 웃음이 터졌다. 사진은 총 131장. 그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썩소는 무엇인가. 남편의 경직된 미소. 왼쪽 오른쪽 제멋대로 시선을 주고 있는 아이들. 그중에 모두가 정면을 보고 있고 덜 어색한 3장의 사진을 골라야 한다.

ㆍ그나마 괜찮은 썩소 사진으로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주니 엄마가 평생 남을 사진을 그따위(ㅋㅋㅋ) 표정으로 남길 거니? 다시 찍어!! 하고 카톡을 보냈다. 내가 봐도 살짝 아니꼬운 표정이긴 한데 나 빼고 나머지 3명은 잘 나왔다. 그냥 그걸로 만족하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화도 났다.

ㆍ이유 없는 화는 30분쯤 지나자 사라지고 그냥 앞으로는 사진 촬영 때 오른쪽에 서자. 그리고 손거울을 하나 들고 가서 내  표정을 한번 점검하자. 나는 머리를 푸는 것보다는 묶는 편이 낫다. 하는 결론을 내리고 내년 가족사진 때는 잘 찍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 말고 다른 곳에서 찍자 ^.^)고 남편에게 제의했다.

ㆍ다른 지방을 놀러 갔을 때 그곳의 괜찮은 사진관에서 찍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결혼 1주년 때부터 찍었다면 지금쯤 5장은 찍었을 텐데 늦게 찍은 게 못내 아쉽다.

ㆍ내일이면 둘째의 백일이다. 내일 또 가족사진을 찍는다. 내일은 오른쪽에 서고, 머리를 묶고, 손거울을 몰래 들고 가 입가를 점검하고, 눈에 힘을 주고 딱 그렇게 찍을 거다. 평소 셀카도 안 찍어서 내 얼굴이 어느 쪽이 나은지 몰랐는데 오늘 하나 배웠다. 씁쓸하네.

ㆍ아무튼 오늘의 일기 끝.

ㆍ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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