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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차에서 잠이 들고, 운전하는 남편은 네비게이션 여자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 채우는데 1시간은 걸린거 같다. 까먹지 않게 이것저것 천천히 챙겼지만 짐을 다 싸고 나서도 빠뜨린것이 꼭 있다.

이번 2019년 설날은 주말부터 이어진 꿀휴가다. 토, 일, 월, 화, 수 5일간 길게 이어진 연휴라 다들 여행을 가기도 할 것이다. 사니 못사니 징징대도 다들 짐을 싸서 한국을 떠나 여행을 간다.

 국내여행의 바가지요금에 넌더리나서 간다는 글도 종종 봤고, 동남아 여행에서 환상이 산산조각나서 돌아왔다는 후기글도 있고 아무튼 다들 바리바리 짐을 싸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다.

연말휴가때 시댁에 내려갔다가 이번에 가는 것이라 차에서 출발전 시어머님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에서 전화하기 버튼을 누르니 가장 최근 통화기록이 작년말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자주 전화를 안드리는구나...  친정에도 전화하는 편이 아닌데 그 버릇 하물며 어딜갈까

명절만 되면 한번쯤 출발전에 하는 상상이 있다. 대략  이런것이다. 즐비한 기름진 음식이 가득한 차례상을 보며 한숨쉬듯 시어머님이 "그래. 이제 내 대에서 제사를 끝내는게 너희도 덜 힘들거다." 라고 먼저 얘기해주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당연히 그분께서는 형님 결혼하실때 제사상에 올릴 그릇세트를 잔뜩 사셨던 것처럼 고집스럽게 명절때마다 기름끼 가득끼인 음식을 한상 차리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형님과 나는 둘 다 겹치지 않게 1~2년에 한명씩 아기를 낳는 바람에 직접적으로 제사상차리기 미션에 적극 투입된적이 없었다.

자식을 둘씩 가지게 되어 어멋님께서 요리준비를 하실때 돕기보다 육아를 하게 되는데, 왠지 향후 2~3년후부터 적극적인 차례상차리기에 가담하길 원하실거다.

죽은이를 기리며 조상신께 풍족한 음식을 쌓아두고 절을 올리는것만큼 바보같은게 또 있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제사상이 끝나고 다같이 모여앉아 기름진 음식을 나눠먹고 나눠가져가서 먹는 모습이 정겨울때도 있다.

어쩌면 명절은 핑계이고 이렇게 다같이 1년에 2~3번씩 제사때 마주보자고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귀신을 진짜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다들 열과 성을 다해서 제사를 지내겠지?

인터넷에 명절만 되면 회자되는 '제사없는 집' 이야기를 읽으며 은근 부러워하다가 직접 현실적으로 상상해봤다.

명절이되어 형님네와 어머님 우리식구 이렇게 9명이서 비행기를 타고 어딜가지? 하며 검색하거나 음식점을 검색해서 예약하는 모습말이다.

이런생활에 익숙해진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진다. 사람은 해보지 않은 일에 막연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나보다.

그래도 이렇게 날짜맞춰 다같이 쉬는김에 겸사겸사 얼굴보는거지 뭐. 그까이꺼 음식 하루 고생하면 되는거잖아. 이렇게 가볍게 근심을 털어내려고 해봐도 역시 사람이 귀찮은건 귀찮은거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는 사실 기왕 명절이고 또 기왕에 어디론가 가야한다면 시댁이 서울이여도 좋겠다는 작은 희망사항을 생각해본다.

시댁을 향하는 차안에 잠자는 아기하나, 내 뱃속에 아기하나, 말없이 뒷자리에서 폰자판을 두드려 포스팅하는 나, 짧은 욕설을 섞어가며 124 키로 속도로 밟는 남편이 있다.

이번 명절에는 내 흉을 봐주지 말길 바랄뿐이다. 나도 친정가서 똑같이 복수해줄테니. 흥.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운전을 못하는  나에게 무인자동차같은 신세계가 열리게 된다면 시댁가는 차안에 핸들앞 주인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곧 태어날 둘째녀석의 카시트를 지금의 내 자리인 뒷자석에 놓게 된다면 나는 어디에 앉아서 가야하나...같은 걱정도 잠시 하고 말이다.

티스토리에 마지막글이 둘째 임신전이였던거 같다.  차라리 그때부터  꾸준히 썼다면 좀 더 보기좋은 알찬 일기장 블로그가 되지 않았을까...생각도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정보를, 유익한 정보를 줄 수는 없지만 나같은 앞뒤 꽉 막힌 여성도 서른훌쩍 넘어서 엄마가 되어 세상속에 살아간다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써내려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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