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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환영해

kkiihhii 2019. 6. 24. 10:11


요 며칠 기분이 너무 다운되어 있었다. 이유는 별 거 없는데, 매달 다섯 번은 생각하게 되는 지긋지긋한 노년 걱정이다. 사랑하는 우리 찡이 벌써 4살이다. 녀석이 대학교를 가면 집에서 독립을 할 테지. 벌써 그녀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의 5분의 1이 날아갔다.

 15년밖에 남지 않은 딸과의 시간. 우리 엄마도 하나 둘 아이들을 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잘 갔다 요 녀석들!'일까 아니면 '드디어 해방 야호!'이랬을까?

그런 세월의 빠른 물살 앞에서도 곁에 누워있는 인형 같은 우리 둘째는 세상모르고 잘 자네. 아이들은 잘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고. 생각보다 잘 웃어주는 둘째에게는 그저 고맙네. 오늘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해줬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이 한마디를 하는데 10달이 걸렸네. 아이 하나 더 태어나니까 우리는 어떡할 거냐고 남편과 걱정 어린 말을 주고도 받고, 우울해져서 울 것 같은 시간도 많았다.

세상 다 우울하고 불행해진 거 같아서 외동인 사람들에게 둘째는 금하라고 눈치 없는 말도 막 하고 다니고, 낳아놓고도 면회도 자주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낳고 3일쯤 되었을까? 초유도 감기약을 먹어서 다 버리고 아기는 어찌 크는지 생각조차 안 하던 그때 친정식구들이 찾아와서 같이 면회를 갔다.

그냥 아기네.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내 몸하나 추스리기 바빴다. 그러다가 조리원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일주일 만에 아기에게 젖을 물려보았다. 그냥 아기네. 그냥 아기. 엄마가 무심하다는 걸 안 건지 조리원에 다른 아기들보다 제일 잠을 잘 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집에 와서도 안아주지 않아도 분유를 먹고 혼자서 잠이 들었다.

다른 지인들이 너는 아기 거저 키운다고 말을 한다. 거저 키운다고? 나는 지금 아기를 거저 키우는 건가.

오늘도 빨래를 돌리고 널기 전에 잠시 앉아서 모빌을 보고 있는 아기 옆에 앉았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너는 내가 좋으냐. 나는 네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를 하나 낳아봤는데도 아직 키우는 게 서투른데, 또 한 명을 낳았네. 너희에게는 선택권도 없고, 그저 내가 주는 대로, 입히는 대로, 말하는 대로 십 년을 살아야 하네.

어떤 날은 내 푸념을 들어주는 감정 쓰레기통도 되었다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도 되겠지. 그래도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같은 사소한 질문을 매일 해도 전혀 화내지 않을 존재가 생긴 거 같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매일 남편과 하는 이야기인데 너희들과도 곧 나누게 되겠구나.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때까지 이 작은 집에서 잘 지내보자. 둘째야.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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