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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우리집

kkiihhii 2019. 6. 21. 04:56

오늘은 어제 일기에 잠깐 언급했던 아는 언니네를 다녀왔다. 떡뻥을 사 가지고 가려던 계획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무산되었다. 대신에 집에 사두었던 무농약 블루베리 한팩을 가지고 갔다.

사실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내가 왜 이 만남을 흔쾌히 허락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일단은 같은 회사 언니들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이를 낳았다. 또,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는 3가지 거대한 장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친해지기 힘들겠지만 우선적으로 엄마들끼리 친한 것이다. 나와 두 언니. 이렇게 세명인데 여기서 나의 포지션은 '막내'이다. 서투르고 약간 무례해도 막내라는 타이틀이 모든 것을 커버해준다. 뭐 그래 봤자 한 살 막내이지만.

유쾌한 시간이었다. 항상 모임을 가지게 되면 으레 겁내는 것이 있다. "이 차례가 돌고 돌아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어떡하지?"하는 무서운 생각 때문이다. 나는 참고로 누군가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내 사생활을 침범당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인간적이다 못해 더럽기까지 한 삶의 흔적들이 베인 집안 풍경들, 그리고 남들보다 많이 사놓지 않은 육아 템이나 장난감들이 어우러져 같은 아기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한다는 의미는 곧 이렇게 받아들여진다.

"놀 것도 없고 딱히 맛있는 것도 없는 시시하고 재미없는 우리 집에 놀러 온다."는 생각이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우리 집을 오픈하기 싫은 걸까. 의자 다리 밑에 깔린 먼지들이 부끄럽고, 화장실 세면대에 끼인 물때가 부끄럽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더러움을 보이는 것이 치욕스럽게 느껴지고,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다고 느낀다.

아기띠가 있다. 첫째 때부터 쓰던 것인데 때가 안 탈 거라면서 구입한 남색이 오히려 수차례의 세탁으로 인해 탈색된 듯 보인다. 아기가 이제 55일째라서 다리 벌어짐을 막으려고 대충 고무줄 2개로 허리춤을 묶어놓은 그 닳고 닳은 아기띠를 힐끗 쳐다보며 넌지시 착용기간을 물어보는 질문도 싫다.

그냥 뭐랄까. 누군가에게 꼬투리 잡히는 것도 싫고 싫은 소리 하기도 싫다. 누군가와 친해져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는 레퍼토리가 펼쳐질까 봐 지레 겁을 먹고, 행여나 말실수를 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나에게 인간관계란 이렇게 많이도 재고 따지는 그런 것인가 보다.

적당히 밖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가진 주부들과 친해진 다는 것은 서로의 집도 드나드는 친목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돌 전 아기는 케어가 힘들어 서로의 집을 차례대로 방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달라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아이도 둘이고, 첫째 아이가 행여나 친구라도 데려올 수도 있고 둘째 아이와 동갑인 아이의 엄마들이 우리 집에 올 수도 있겠다.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시어머니가 들락 거리고, 매주는 아니지만 가끔 생각나면 친정 식구들도 드나드는 집이 되겠지.

언제까지 이 집을 꽁꽁 싸매고 안 보여 줄 수는 없겠지. 이런 걸 엄마가 된다는 하는 건가. 뜻하지 않게 날카롭고 예민한 부분들이 '자식'이라는 복병으로 차례차례 다듬어져 간다. 몸서리치게 싫은데 받아 들일수밖에 없는 현실이 통탄스러울 뿐.

아이가 언제나 친구를 데려와서 놀아도 편한 집으로, 친한 맘들이 놀러 온다고 해도 걱정 없는 집으로, 내일 당장 시어머니가 며칠 묵어간다고 해도 더 치울 것이 없는 집으로. 그런 집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집을 만드는 나도 좀 더 타인에게 가슴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과 말에 상처 받기도 전에 문을 닫을 생각을 접도록 하자. 굉장히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아무도 우리 집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런 마인드라면 나에게도 자식에게도 썩 좋을 것 같지 않다.

성격은 바뀌기 힘들다는데 상황이 바꿀 수도 있구나.

나 왜 이러니-_-에혀
뭔가 한숨 난다.

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한 줄 요약해야겠다.

한 줄 요약 : 내 삶은 다크 했는데 딸들이 뽀로로 색깔로 다 칠하고 있다. 개구쟁이 뽀로로가 내 삶을 침범하고 있다!!!!!!!!!!!!!!!!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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