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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엄마 연기를 시작한다.


최근에 나는 생각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기는 아주 웃긴 것이였다.

자주 기웃거리는 커뮤니티에서 인기글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웃긴짤이 대세였다. 짤내용은 한가지 주제를 정하고 금하는 것인데 다들 몹시 힘겨워하며 욕짓거리로 서로를 북돋아(?) 주는 훈훈하다 못해 짠내나는 상황이였다. 다들 별말 안해도 서로가 힘이 드니 예민 까칠해져서 으르렁 대는 모습이 3자인 입장에서 봤을때 꽤나 재밌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익명방에 들어가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익명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단어를 검색했는지는 비밀로 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입장하게 된 나는 별명부터 고심하였다. 무엇으로 해야 초간지 나면서 미스테리하고 남잔지 여잔지 구분도 못하게 될까 고민하면서 6글자로 이름을 짓고, 캐릭터를 골라서 입장하였다.

굉장히 작은 인원을 수용하는 곳이였다. 내가 들어가니 고작 자리는 2자리 정도가 비었고, 다들 말이 없는 상태였다. 일단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부방장쯤으로 보이는 왕관모양을 쓴 영어별명이 공지사항을 복붙하였다. 나는 세심하게 공지를 읽어보고 보통 이 방에 들어오면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영어별명은 "보통 이곳에 오면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잠시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쯤에서 내 글을 꽤나 읽어본 양반들은 눈치 챘겠지만 나는 엄청난 관종이다. 특히 나 자신이 주목받는 일은 몹시 흥분 상태를 일으키고, 더욱 격분해서 팔불출이 되는 스타일이다. 짐짓 그렇지 않은척 연기할뿐 마음속에서는 BTS 버금가는 월드스타의 꿈을 잔뜩 머금고 있단 말이다.

뭔가 이 양반들에게 먹이를 던져줘야 할 것 같은 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의 노후걱정을 살짝 적어봤는데, 그건 그냥 몸이 부셔져라 돈 벌면 된다고 생각해서 적다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무엇이 고민이냐.

혼자가 너무 좋아서 고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몇 달을 혼자 있으면 며칠정도는 어떤 무리에 들어가고 싶고, 어떤 무리에 들어가면 혼자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의 무한반복이라고 하였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몇 달에 한번은 무리와 놀아야 하고 그럴때만 친한척 다가서는 나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자 영어별명이 나에게 성격테스트 링크를 주었다. 본인이 어떤 성격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ㅋㅋㅋ) 심리테스트를 냉큼하였다.(이렇게 나는 또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는 거부적 회피유형이 나왔다. 그러자 영어별명님이 혹시 부모와의 관계를 물어보셨다. 당연히 나는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렇게 시작된 상담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분은 나에게 부모를 용서해보는건 어떻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나는 아직도 우리 부모님을 용서할 생각은 없다. 나의 유년시절은 부모님들 때문에 우울했다고 생각하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엄마와는 죽어도 같이 못 산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아빠와도 그리고 엄마와도 같이 살꺼라는 생각은 1도 없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잘해드릴껄 그랬다는 글을 많이 본다. 전화도 자주 드리고 효도도 하고 자주 찾아뵐껄 그랬다는 댓글들이 수백개가 달린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부모와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비교, 무시, 폭언, 폭력, 눈치 같은 단어들뿐이다. 거기다 20대중반에는 증오, 분노, 섭섭함 같은 것까지 더해져서 아주 남남으로 살고 싶은 생각뿐이였다.

개인적으로도 가족과 호적을 파버릴뻔 한적이 몇 번 있어서 결과적으로 나는 가족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런데 그것이 원인으로 작용해서 나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이런 성향을 그대로 딸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를 무시할 수없다고 한다. 내 딸들은 지금의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을 내게서도 느낄지 모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부의 세습이 아니라 증오의 세습이다. 어째서 이렇게 나쁜것들은 쉽게도 전파되고 전염되는 것인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딸도 어쩌면 나를 1도 같이 있기 싫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 들은 오디오클립에서 사람이 3번 독립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 3번째가 60살이 넘어서 하는 독립이라는 말에 수긍하였다. 나는 어쩌면 자식에게서 더 일찍 독립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찡을 보는 마음이 착찹해졌다.

받아본적 없는 부모의 사랑을 그녀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책을 읽으면 같이 보고, 퍼즐을 맞추면 같이 맞춰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고, 같이 꽃을 보러 산책을 나가는 것 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그녀를 위해 적당한 관심 그리고 비교하지 않는 언행, 닥달하지 않고 잔소리 하지 않는 품격있는 엄마 코스프레를 해야 좋은 엄마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나다 못해 뾰족뾰족한 내가 두 딸들을 사랑해주며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되었다. 어쩌면 나는 딸들에게 페르소나를 쓰고 대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는 너무나 차갑고 뾰족한 사람이라서 그래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고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한번 더 행동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 20년을 연기해야 할 '좋은 엄마' 가면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적어도. 너희에게는 남과의 비교, 폭력은 절대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제일 중요한건 말이겠지. 나는 좋은 가면을 쓴 엄마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무척 피곤할 것이다. 그러나 이 증오의 세습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꼭 그렇게 행동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좋은 엄마 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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