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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kkiihhii 2019. 8. 14. 02:46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봤었다. 당시에는 때 묻지 않은(?) 시절이라 그런지 마츠코가 유흥업소로 빠지고,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순애보 캐릭터라서 단 1%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굉장히 비호감이었다.

왜 내가 마츠코를 비호감으로 생각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마지막 엔딩씬인 강물 따라 마츠코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조차도 '포장하고 있네..'라는 한심한 생각으로 시청했을 뿐이다.

그 이후로 종종 인터넷에서 이 영화 제목을 수차례 목격한다. 그냥 피하고 싶은 제목. 두 번은 안 볼 영화. 딱 그 정도였다. 굳이 내 시간 들여서 기분 망치고 싶지 않다는 명목 하에 그녀의 혐오스럽다는 표현에 걸맞지 않게 가련하고 안쓰러운 삶에서 눈을 돌렸다.

나는 그렇게 쭉 몇 년간 이 영화를 외면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아이를 두 명이나 낳고 남편도 생기고 인생에 대해서 젊었던 시절의 몇 배로 고민하는 시기가 왔다. 어젯밤 사람들이 적은 글을 보았다. "보고 나면 우울해지는 영화 추천"이라는 영화의 리스트를 봤다. 긴 스크롤을 따라 내려가는데 단 한편도 본 적 없는 영화들 뿐이었다. 그러다가 댓글을 보는데 사람들이 또 그 영화 이야기를 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명작이라고. 그 밑에는 맞다며 대댓글들이 달려있었고 다시 한번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보고 나서 기분 더러웠던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인생작으로 손꼽는 영화라. 참 웃기는 영화네.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가.

그래서 네이버에 제목을 찾아보니 포스트로 긴- 장문의 리뷰가 눈에 띈다. 읽어보는데 너무 길어서 문단마다 중반부까지 밖에 안 읽고 내렸다. 한참을 스크롤을 내리다가 큰 제목과 약간의 내용만 읽는대도 그동안 내가 그 영화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저지른 많은 행동들은 사실은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고, 사랑하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는 점. 무뚝뚝한 아빠 밑에서 따스한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점. 그런 아빠를 웃겨보려고 일그러뜨린 표정을 짓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점. 그런 표정조차 누군가가 바로 잡아 주지 않고 그대로 커버린 점. 몸이 아픈 동생에게 밀려 항상 2순위라고 생각하는 점.

그녀의 삶이 나의 이야기였다. 그 포스트를 보고 평점을 읽어봤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자신의 삶 같아서 보는 내내 슬펐다는 글들이 보인다. 그 글을 읽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누군가가 (해선 안되지만) 2시간짜리 영화를 통째로 블로그에 올려놨다. 그래서 자막이 없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냥 플레이해봤는데 자막도 잘 뜨네. 시간은 밤 11시. 두 아이와 남편은 방에서 자고 있고 나는 뭐에 홀린 듯 이어폰을 끼고 누워서 영화를 봤다. (이렇게 나는 철컹철컹 하나요?)

초반부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씬이 많다. 내가 읽은 포스팅 주인은 그 씬이 상징하는 것은 절대로 마츠코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죽는다. 죽는다. 죽겠다. 죽겠다. 하는 말들이 많은데 그것처럼 배고파 죽는거, 기다리다 죽는 거, 웃겨 죽는 거, 예뻐 죽는 거, 죽도록 사랑하는 거. 티비속 배우가 허상으로 죽는 거 처럼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 죽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고, 죽음이란 건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대놓고 죽는 장면을 봐도 이제는 무덤덤해지는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부 절벽에서 자살하는 씬은 전혀 이상스럽지 않다. 죽네.

우리의 마츠코는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몸이 아픈 동생을 항상 먼저 챙기는 아버지. 그런 동생이 싫고, 자신을 차별하는 아버지가 싫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 결국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출을 한 후에 아버지를 대신할 남자들의 사랑에 목메지만 왜 때문인지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폭력을 일삼는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는 글작가, 그 글작가가 자살한 이후 그의 라이벌이었던 유부남과 사귀지만 곧 헤어지고, 그 뒤로 유흥업소로 빠지지만 몇 년 안 가서 신입들에게 밀리고, 그 후 기둥서방을 만나 동거하다 살해하고, 자살하려다 만난 이발사와 1달 동거하다 경찰에게 살인 용의자로 잡혀가고, 출소 이후 야쿠자인 어린 시절 제자였던 남자와 동거하고.

다시 영화를 보니 그나마 이발사였던 남자가 정상적이었던 거 같다. 아니지. 그들 중에 정상인은 있는 걸까 생각도 든다. 그 영화에 나온 모든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들 모두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가 정상인인가. 자신을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쓰고 보니 이것도 섣부른 일반화긴 하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딸은 커서도 계속 남자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신경 쓰인다. 생각해보니 나는 밉다 밉다 하지만 아빠에게 어느 정도 사랑을 받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살면서 저 정도로 남자에게 집착한 적이 있던가? 사랑을 받고 표현하는 것이 꼭 이성에게 국한되지는 않을 텐데 우리 마츠코는 계속 아빠를 대신해줄 누군가를 찾아다닌 거네. 슬프다.


큰일이네. 벌써 새벽 2시다. 마츠코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우울해진다. 단 한 번이라도 그녀는 살면서 긴 시간 동안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잠깐 동안의 연애 속에서 답답함이 해소되었겠지만 오래가진 않았고 심지어 40살이 넘어서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에 그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그녀의 삶이 내 미래가 안 되리라는 보장은 없고, 어쩌면 나도 언젠가 타인들과의 접촉을 모두 끊고 은둔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누구와도 알고 싶지 않은 상태. 사회생활을 하면서 으레 몇 년에 한 번씩 우울감을 심하게 겪었던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 아무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고, 생각도 하기 싫고, 오랜 시간 잠만 자고 싶어서 하루에 12시간 넘게 자던 시간들. 주말에도 나가지 않고 빵 하나 사과하나 정도만 먹고 내내 침대에 그냥 누워만 있던 시간들.

살아 무엇하나, 죽어 무엇하나.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는 나 죽어서 좋을 거 없고, 통장에 단 천 원이라도 안 남기고 다 쓰고 죽어야겠다는 이 초딩같은 생각이 오히려 나에게는 원동력이 되었던 거 같다. 요즘 나를 살게 하는 생각은 '그래도 두 딸들 독립은 시켜야지'하는 생각. 결혼은 선택이니까 뭐.

이 새벽에 글이 기네. 보통은 다시 읽어보고 고쳐보고 하는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글로 올려두련다. 잘 자야지. 모두들 잘 자. 굳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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