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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란?


사람이 살다 보면 인생에 터닝포인트 같은 지점이 오기 마련이다. 모처럼 만에 궁상맞게 누워서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회사를 빼고 돈을 벌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가. 그나마 간간히 글을 쓰는 SNS를 통해 4~5만 원선의 소소한 커피값 정도는 벌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한다. 조금  전까지 내가 네이버를 통해 검색하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라디오 사연 보내기", "글쓰기 공모전" 이런 것들이다. 모두 10여 년 전에 자주 검색해서 도전해보고는 했던 것들이다.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역시나 어느 정도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에게 좋은 점이 많다.

꽤 괜찮은 공모전은 어떤 책 표지 디자인을 구하던 글이었는데, 그 사람의 블로그에 가서 그동안 쓴 글을 썸네일만 살짝 훑어봤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린 딱딱한 화풍의 그림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잠시 생각해봤다. 내가 오전에 가사를 끝내고 건너편 방으로 건너가 포토샵을 켜고 한 땀 한 땀 로봇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말이다. 거기다가 채색까지.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래도 공모전 상금이 무려 100만 원이다. 내가 1년을 SNS에 글을 써도 못 벌 것 같은 글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스마트폰과 무선 키보드에 의존하는 웹 생활이 몸에 베여버린 관계로 그냥 그림의 떡을 보듯 지나쳐 버렸다.

그나마 당장 응모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박카스 젤리의 네이밍 공모전이었다.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댓글로 박카스 젤리의 참신한 이름을 가득 올려놨다. 그래서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바까쓰"라고 적어봤다. 언뜻 보니 일본말을 억쎄게 발음하면 나오는 이름이네. 100% 떨어질 네이밍이다.

탁하면 툭하고 입에서 아이디어가 불쑥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상 특별난 이름이란 사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특별하다는 것도 아마도 많은 그동안의 제품들 네이밍에 비추어 비슷하게 도둑질하는 콘셉트이겠지. 우리는 항상 눈에 익숙하고, 자주 봐온 것들에게 더욱 친숙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마 주관사가 원한 것도 새롭고 기괴한 이름이 아니라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센스 있는 네이밍을 비슷하게 카피한 어떤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럼 뭘 해야 하나 하며 기웃거리다가 문득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글 쓰고 싶으면 SNS보다는 차라리 라디오 사연에 응모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네이버에 라디오 사연 응모하기 같은 글을 검색해보았다. 딱히 어떤 가이드라인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분의 1년 전 라디오 사연 보내기 꿀팁이라고 적은 연관 글이 검색되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자신은 중졸(?)인데 글쓰기로 라디오에서 상품권도 받고 밥솥도 받고 같은 자랑을 잔뜩 늘어놨다. 같은 카테고리 안에 비슷한 연관 글을 더 읽어보았다. 결국 요점은 이거였다.

- 내가 응모하고자 하는 라디오를 들어봐라.
- 그리고 그동안 당첨된 사연들을 쭉 훑어보라.
- 작가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을 파악했다면 글을 쓰라.
- 여러 개의 복수 아이디가 좋다. 물량 공세인 것이다.
- 가급적 내가 쓰는 아이디의 연령대와 성별을 생각해서 화자를 바꿔가며 몰입해서 써라.
- 당선이 되면 방송국에서 전화가 몇 통 올 것이다. 쫄지 말고 침착하게 받아라.
- 너무 양념을 많이 끼얹지 말고 약간의 변형만 줘라.

이런 팁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글을 검색해봤다. 이런 팁들이 있었다.

- 20~30대에는 컬투쇼 같은 곳에 사연을 보내라.
- 여성시대 같은 곳도 알고 보면 짭짤하다.
- MBC가 경품이 빠방 하다.

뭐 이런 소소한 팁들이었다. 라디오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일상이라서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지. 나는 라디오를 듣고 있지 않다. 그나마 듣는 것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인데 그 마저도 최근에 좋아하는 북칼럼니스트 것은 모두 정주행 하였다.

아마도 내가 라디오에 사연을 쓰게 된다면 여성시대 같은 곳에 곧 출산을 열흘 정도 앞둔 만삭의 임산부입니다. 하면서 글을 쓰겠지? 그것도 쓸지 안 쓸지는 모르겠다. TV도 안 보고 스마트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는 세대다. 이제는 공모전도 내가 하고 싶은, 도전하고 싶은 곳만 바라보고 그 마저도 귀찮다고 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람이 도태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뭐 이런 생각도 앞으로 일주일이 지나면 사라질 테지만. 그래도 모처럼 만에 나 자신의 역량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영어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번역가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 같아서 사실상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 어떤 회원님이 올린 카페 게시글에 긱스라는 책 리뷰를 김미경 강사가 영상으로 올린 것을 들었다. 우리는 디지털 노매드 시대를 맞이해서 앞으로 프리랜서가 되어야 밥벌이 걱정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요즘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강의를 해놨다.

내가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란? 이렇게 SNS에 글 쓰는 것. 며칠에 한 번씩 유튜브에 10분 남짓 볼펜으로 색칠도 없는 그림 그리는 영상 올리는 것. 가끔 꿀팁이나 리뷰라고 생각해서 글 써보는 것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 마저도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밀고 왔는데 실상은 나의 하루를 잡아먹을 뿐.

우리 집 가사와 육아일에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내 입장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딱이다. 글 쓰고 댓글로 인심도 얻고, 하루에 짧게라도 손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하던 것을 SNS에 올리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장문의 글을 익명으로 올릴 블로그 한 개, 자잘한 수입을 위해 약간의 페르소나를 쓰고 글을 쓰는 블로그 하나, 그리고 손그림 유튜브는 차라리 인스타랑 연계하는 편이 더 나았으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걸로 어떤 좋아요 수를 바라는 것도 약간 두근거린달까.

다음번에는 손그림도 좋지만 내가 쓴 글을 직접 손글씨로 적어서 영상으로 업로드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약진이 큰 도약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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