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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날 것 그대로의 중얼거림

kkiihhii 2019. 7. 20. 01:51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속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모든 인간이라면 으레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마련이라지. 근데 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을 많이 한 거 같다. 중얼거리기.

언제부터 나는 자신 있게 나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중얼거리게 된 걸까?

지금의 내 상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꽤나 옛날로 되돌아 가야 한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나는 친구들과 융화되지 못했다. 그들의 놀이가 다소 과격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적으면 굉장한 천재라도 된 거 같은데 실상은 그냥 무리에 끼여서 놀지 못하는 바보 정도로 알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상에서 말 못 하고 행동도 없는 벙어리였나? 아니. 나는 골목대장이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아무튼 그 중간쯤 되어 보일 정도로 나름대로 아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지냈다.

그런데 꼭 그놈의 단체생활은 나를 힘들게 하였다.  아니. 아이들 대여섯이랑은 잘도 놀면서 왜 유치원에서는 입 다물고 조용했었나? 지금 생각해보니 유치원 원장이었던 털복숭 아저씨가 다름 아닌 우리 아빠와 친구여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긴 하다. 너무 왈가닥으로 놀면 아빠의 귀에 들어갈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한 나는 초등학교 때 절정이었다. 말도 잘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행동도 빠릿빠릿하지도 않은 그저 그림자 같은 아이였다. 그래도 하굣길에 같이 걸어 다니는 여자아이 하나와는 말을 터서 조금씩 말을 하긴 한 거 같다. 물론 그런 시간보다는 혼자서 하굣길에 걸어서 집으로 조용히 온 기억이 훨씬 많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나처럼 말수가 없는 여자아이와 자석에 이끌리듯 친해졌다. 그리고 한 명과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2명도 더 붙어서 우리는 4명이 같이 다니는 친구 무리가 되었다. 반에서 가장 말수 없는 무리로. 말수 없는 우리끼리 그렇게 뭉치니 새삼 이런 게 학교 친구라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하교 후에는 항상 동네 아이들과 흥겹게 놀았지만 유독 학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단짝과 중학교도 같이 가게 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집에서 말하듯 점점  말수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처음 친해진 말없는 아이와 고등학교도 같이 가게 되었다. 나보다 더 말이 없던 그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자 말수가 좀 늘었다. 이것도 대인관계에 닳고 닳다 보니 어느새 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단체생활이라서 말은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딜 가나 말없는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말이 있다.

"넌 참 착하구나?"

징글징글한 이 말과 함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른들의 입에서 나왔다.

"내성적인 아이"

그놈의 내성적이란 말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 써둔 것을 모두 컨트롤 씨 해서 컨트롤 브이라도 하는지 나의 생활기록부에는 언제나 첫 소절은 "내성적이나.."

그리고 그 뒷말은 별거 없다. 화분을 잘 가꾼다.( 가꾼 적 없다), 정리를 잘한다(기억도 안 난다.), 모범적이다.(말이 없다고 모범적이진 않은데)

그래서 통지표가 나오는 날은 언제나 가슴을 졸이며 펴보았다. 이번에도 내성적이라고 적혀있는 건가? 하면서 말이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나는 아주 열심히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몰랐을 뿐.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실업계에서 바로 취업하였다. 그리고 20대 중반까지도 그 이야기가 계속된다. "야, 너 참 착하다"

과연 내 속마음을 다 들어보고도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이 해석한 나의 행동은 천사 프레임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히 그 모난 성격을 입으로 잘 단속해서 학교 생활은 어떻게 잘 마무리한 거 같기도 하네.

세상에서 가장 중얼댔는데, 왜 나는 그들에게 칭찬을 들었을까? 말수가 없는 여자아이는 으레 착하다는 버프를 받는 건가?

아무튼 본의 아니게 입 닫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덕분에 많은 오해와 분란, 갈등이 있었던 것은 비밀도 아니다. 심지어 며칠 전에도 A4용지 5장을 빽빽이 채워서 내 속마음을 이 중얼거림을 손에 꼭 붙들어 주고픈 언니를 만났으니 말이다. 언니. 언니가 생각한 그런 거 아니야. 말을 하자니 길고 그렇다고 나를 1대 1로 만날 정도로 우리 친하지 않잖아. 우리 사이는 어떻게 정의할까?

따로 둘이서 밥 먹기는 불편한데, 어쩔 수 없이 무리에 끼여있어서 몇 마디 나눈 사이?

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을 닫아버렸다. 그렇다. 나는 회피형 인간에다가 중얼거리는 바보이기 때문이다. 여차저차 설명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상대방을 확 돌게 하는.

처음에는 착하다고 느끼지만 갈수록 돌덩이 같은 사람이다. 나는 중얼거리는 돌덩이.

그래도 일기니까 오늘 한 착한 일을 적어야지.
작년 크리스마스 이후로 올해 처음 인스타 사진을 업로드하였다. 둘째가 태어난 지 87일이다. 대뜸 둘째 얼굴만 올렸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서 "쨔잔"이라는 두 단어만 적은 채 말이다. 업로드하고 보니 태그를 안 붙여서 수정 버튼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래도 나름대로 애쓰는 돌덩이라서 아는 지인 5명한테 가서 댓글과 하트도 눌러주고 왔다. 그러고 나서는 오늘의 희망찬 인맥관리를 하였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꼼꼼하게 내 사진 밑에 달린 댓글 4개에 대댓글을 달고서야 한시름 놓인다. 아주 외톨이는 아니잖아? 좋아요도 5개를 받았다. 성공적이랄까.

그러다가도 또 며칠 전 마주친 지인 언니의 싸늘한 눈빛이 생각난다. 어쩌면 좋지?

사실 이 글의 발단도 그 눈빛에서 시작되었다. 화요일부터 내내 생각나던 그 서늘한 눈빛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 말을 해보라고. 말을 해보라고 재촉하는 건가. 아니면 제발 아는 척하지 마. 제발.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왜 그런 얼굴로 쳐다보고 지나쳤을까? 언니. 우리 친한 거였어?

서로 만나서 상대를 생각한 시간만큼의 cm를 재어서 비교해보고 싶어 졌다. 그런 발명품이 생긴다면 당장 살 의향도 있다. 말을 안 해서 좋다가도 필요할 때조차 말을 하지 않아서 사람들과 멀어져 가고 있다. 30살이 넘어도 말의 적합한 쓰임과 TPO가 안된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 1시 반에 이렇게 중얼댄다.
중얼. 중얼. 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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