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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줌마

kkiihhii 2019. 7. 1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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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한방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이 한방은 몹시 기다려지고 갖고 싶은 어떤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커서 그림으로 인생에 한방을 날릴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의 그림은 미대에 다니는 수천, 수백만 학생들보다도 못한 수준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나의 인생한방은 수정되었다.

나는 그 뒤에 일을 열심히 해서 최고 꼭대기에 오르는 상상을 하며 인생 한방을 기다렸다. 그러나 회사 일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한방 오기도 전에 내 몸이 한방에 훅 갈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또다시 방향을 수정했다. 나는 글로 이 세상에 큰 한방을 날리고 싶었다. 그래서 국문과도 그렇다고 글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누군가가 필사하라고 누군가는 무작정 적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25살부터 간간이 달에 한두 번 필사를 깨작거렸다. 그러다가 서서히 나의 한방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작정 피씨를 켜고 앉아서 단편소설을 써보겠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쓸 수가 없었다. 창의적이지도, 그렇다고 말을 잘하지도,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다독을 해서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써내는 글들이란 결국은 신세한탄 일기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한방은 다시 수정되었다. 그 수정된 한방은 애처롭기까지 한 것이었는데, 아이를 낳아 이 세상에 내가 살았다는 먼지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 한방이 아닐는지 생각했다. 나는 서른쯤에는 모든 게 귀찮고 힘들고 지쳐서 현실 안에서 소재거리를 찾아 편안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였는지 모르겠다.

이 마지막 합리화는 너무나 편안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나만 아는 한방이라서 간혹 가다 허무할 때도 있다.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자식이 한방이라니.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남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뭐 이런 미친 아줌마가 다 있냐고 할 거 같다. 미친 아줌마.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나는 아줌마였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 염라는 과연 나의 죄를 사해 줄 것인가? 염라를 놀라게 하고 싶다. 도대체 지구에 무슨 짓을 하고 왔냐고 질책받고 싶은.

내 이름은 아줌마
이렇게 오늘도 정신승리(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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