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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돌아가고 싶은 집

kkiihhii 2019. 7. 11. 08:47
피곤한 아침. 자꾸 끼니를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강냉이나 고구마 같은 걸로 먹어서 큰일이다. 조금만 더 부지런 떨며 밥에 국을 끓여먹어도 되겠지만, 오디오를 틀어놓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일상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원래는 아침, 저녁에는 꼭 밥과 국을 먹었지만 이제는 저녁 한 끼만 제대로 먹고 있다. 그것도 아이와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이라 하는 수 없이 그러고 있다.

지금은 남편이 출장 중이다. 78일 된 아기와 33개월  된 아이를 곁에서 보살핀다. 아직 출산한 지 백일도 되지 않아 내 몸도 성치 않은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 같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들을 누가 먹이겠는가. 

원래가 학생때부터 바이오리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밤도 자주 새우고, 끼니도 아무렇게 먹어대는 생활이었다. 오히려 제조직에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니 너무 규칙적인 삶이라 건강해져 버렸다. 키도 더 커버리고. 거참. 장시간 앉아있던 그 엉덩이 힘도 사라져서 이제는 2시간 정도만 앉아있어도 좀이 쑤신다.

하지만 역시 몸으로 하는 일들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는 일이라고 하고 싶다. 특히 교대를 돌면 더 그렇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2교대 생활을 10년 정도 했는데, 100세 인생에 나는 -10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마흔까지 일하면 -20년이 되겠지? 80살이라니.

앞으로 7년 더 일하고 80살까지 산다고 해도 나쁜 인생은 아니다. 30년 일하면 70살까지 살려나? 70살. 33살에 낳은 둘째가 38살이 되는 나이. 그때쯤에는 손주도 볼 수 있으려나... 그래도 손주들은 보고 죽어야겠지만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두 딸들 결혼할 때 까지는 버텨보는 걸로.

점점 머리도 나빠져 이제는 혼자서 생각하는 것도 힘이 들고, 뭔가를 새로 배우는 것도 받아들이기 벅차다. 고집은 여전히 세지만, 마음은 또 여려서 곧잘 서운해지고 우울해지고 눈물이 난다. 처음에는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

내가 겪은 첫째 때의 산후우울증은 극단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싫은 상태였으니까. 아직 그 수준까지 가지 않은 건 그나마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쓰는 일과 나의 히스테리를 지켜본 남편이 보내주는 혼자만의 외출이 있어서 그렇다. 아마도 곧 6개월쯤 이 패턴을 가져가면 또 터진다. 미치는 거지.

사면이 벽으로 막힌 공간에 열 수 있는 창들이 몇 개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두 명. 곧 사명감으로도 짜증이 나는 한계 구간이 다가오고,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 그 시기를 한번 넘으면 그 뒤부터는 괜찮다. 그리고 두 번째 시기가 온다. 사회로부터 나는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도 다시 한번 넘으면 비로소 엄마가 된다.

지금의 나는 그 두 번의 시기를 넘고 세 번째 시기를 기다린다. 이번에는 잘 넘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산 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운 적이 없는데 제발 이 상태로 1년이 지나길. 아마도 안 되겠지만. 나는 지금 도망치고 싶은 집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집에 살고 있다.

(쓰고보니 나 지금 수용소나 감옥에 있냐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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