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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크리스마스의 악몽

kkiihhii 2020. 12. 25. 08:36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몇 번 만나서 밥도 먹고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다. 그 아이는 나를 편하고 좋은 친구라고 자주 말하며 막 대했고, 나는 그럴때마다 나만 마음이 점점 커져서 속이 쓰렸다. 우리는 서로 안지가 2년이 넘어가고 초반에 약간 썸과 비슷했던 시기가 끝나고 거의 동성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이 그 애는 만나는 여자도 자주 바뀌고, 나한테 잠자리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며 깔깔댔다. 저 변태샹노무시키랑은 손절해야지 수십번 다짐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러지 못하고 걔가 말걸때마다 내심 1%의 기대감을 가지며 틱틱대며 대답해주었다. 얼굴이 내 스타일이야. 저 놈에게 저런 얼굴을 준 신을 저주해야 한다. 누구랑 좀 거하게 싸워서 코뼈라도 무너지고 앞니 몇개 정도 빠져줘야 여자들이 기겁하고 달아날텐데. 그쯤되서 여자들도 없어지면 어쩌면 나랑.....

이런 등신같은 생각을 하며 회사생활에 더욱 매진하려 노력했다. 나는 적당히 큰기업에 다녔다. 내가 있는 부서는 유독 여초였다. 모든 여초들이 그렇듯이 내가 어울려 다니는 패는 5명정도의 멤버가 있었다. 항상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노가리도 좀 까고. 혼자 있을때 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편이 역시 여자들 사이에서 함부로 대할수 없달까? 그러나 이것도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어느날 그 중 누군가 죽어버렸다. 사인은 타살이라고, 그것도 회사안에서 누군가 계획적으로 죽인거라고 형사가 말했다. 본의아니게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었다. 같이 다니던 무리가 용의자라니. 이 전개 너무 빠르고 뜬금없지 않아? 이 부분만 갑자기 2배속으로 전개가 빨라졌다.

나는 아무런 혐의가 없고 결백했기 때문에 아주 당당히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고, 우리 무리는 각자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사건이 그쯤 돌아가자 본의아니게 내가 마음이 있던 그 녀석과는 자연히 연락이 끊겼다. 재차 몇번 연락이 오더니 너가 그러면 나는 회사안에 다른 친구를 찾을꺼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그 이후 연락이 없었다. 그 사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우리 부서 사람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던 짓거리가 잠잠해졌다. 되도록 따로 다니고 혼자 다니려 애쓰는 거 같았다. 용의자는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거기다가 괜히 나대다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한 2주가량 지났으려나... 카톡으로 갑자기 3명이 있는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나 그리고 그녀석, 그리고 모르는 여자아이. 걔가 여자애한테 날 소개시켜준다. 야, 얘 교육 좀 시켜라. 너무 물러터져서 말이지. 재미가 없어요. 재미가~ 라고 말했다. 알고보니 나보다도 몇 살 더 어린 회사후배고. 걔는 이 여자앨 어떻게 해보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되나보다. ㅇㅇ한마디만 쓰고 더이상 채팅을 하지 않고 폰을 내려놨다. 어쩌라는거야. 근데 얘 이쁜가? 이렇게 단톡방까지 꾸려가면서 직접 소개시켜주는건 또 처음이네. 그 정도로 맘에 든다는건가 지금.

내가 마음있는거 알고 있을 녀석인데 이런 짓거리를 하는걸 보면 아주 싸가지가 밥을 말아먹은거 같다. 하긴. 뭐. 연애 척척박사께서 어떻게 모르시겠어. 한번도 본 적없는 그 여자후배에게 질투가 솟아오르면서도 이성적으로 다그친다. 이번 기회에 완전 손절하자 미친놈.

그러다가 퇴근하고 다시 폰을 봤을때는 단톡방에서 나도 모르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자기 집에 나랑 그 여자앨 초대하겠다고 한다. 이 남자는 자기가 유부남인걸 모르나? 자기 와이프와 장모님, 그리고 귀여운 아들도 있는 근면성실한 님께서 같은 회사 여직원 둘을 집으로 초대하시겠다? 항상 말로만 전해들었지 직접 그의 집을 가본적은 없었던 터라 꽤나 재미있는 구경거리 나겠다 싶어서 따라가겠다고했다.

자기가 자신있게 집을 보여주는 이유는 곧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 이사간 집을 보여주면 되는건데. 왜? 뭐. 찾아오기라도 할까봐 그러나? 알고는 있었지만 치밀한 분이시라 아주 혀를 차게 된다. 시간과 날짜가 정해졌고 퇴근하고 친절히 차로 나와 그 후배를 태워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큰 집이었다.

와이프 나이는 2~3살 정도 많았고, 말씨는 나긋나긋하며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유치원생인 아들은 귀엽고 명랑했고, 그의 장모님은 약간 사투리를 섞은 거친말투를 쓰고 있었다. 우리가 올 것이라는걸 알았는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져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집안을 스캔하고 있었다. 결혼할때 자기는 그 누나가 고학력에 부자라서 맘에 쏙 들었다며 자신의 바람끼를 잠재워줄 누나를 찾은거 같았다나 뭐라나 하던 그 자식의 말이 생각난다.

집에서의 그녀석은 온순한 강아지같았다. 아내의 말에 꿈뻑 죽었으며 우리를 깎듯이 대하는 모습은 너무나 밖에서의 모습과 상반되어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와이프분에게 카톡을 보여주며 당신 남편이 이러고 노는거 잘 아시는지 궁금하네요 하고 말하며 웃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적당히 우스운 이야기도 오가고 저녁식사는 종료되었다. 나는 어차피 안 볼 사이인데 왜 챙겨야 하나는 생각으로 빈손으로 왔고 후배는 뭔가를 바리바리 사들고 왔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약간 경쟁심도 생기네. 나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늦었지만 설거지라도 도와야 겠다고 생각해서 싱크대에 물을 틀고 설거지각을 잡았다. 그랬더니 그의 장모님이 오시며 어유 아가씨가 벌써부터 이런거 하면 안되는데!하고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내 옆에 자리하셨다. 내가 거품칠을 하면 장모가 그릇을 씻었다. 솔직히... 나보고 그만하고 가서 자리에 앉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같이 설거지를 하게 될 줄이야. 뭐 나쁠일은 없으니 그냥 얼른 하자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면 그 장모되는 사람과 설거지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신변잡기, 두루뭉실한 옛이야기같은 것들이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없었다. 그냥 말하는걸 추임새와 적당한 리액션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옛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에서는 '아... 그러셨구나.' , '정말요?' , ' 와....' 이 세가지 추임새의 반복이었다. 얼른 끝내고 거실로 나가고 싶어졌다.

나의 시큰둥한 반응을 눈치챈건지 장모가 갑자기 대화주제를 바꿨다. "그녀석 회사에선 어때?" 갑자기 그녀석 질문을 했다. 뭐.... 성실하고, 일도 잘하구요하며 MSG를 가득 뿌려서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모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자기랑 딸은 걔가 여자를 몰래 따로 만나나 걱정이 태산같았다고. 연락이 안될때는 딸이 안절부절 못한다고. 아... 그러시구나. 하며 눈을 아래로 굴렸다. 내심 밥도 몇번 같이 먹고 툭하면 같이 채팅으로 희희낙낙거리던게 생각나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우, 그래도 설마 그런 여자앨 집에 초대하겠어?"라고 떠보는 듯한 질문을 하시고는 활짝 웃으셨다. 이 할멈. 다 알고 있는거 같은데? 같이 바라보며 살짝 웃어주며 손을 빨리 움직였다. 왜 이렇게 설거지가 많은거야. 체감상 1시간은 하는거 같았다. 그 사이 거실에서는 그 여자후배가 와이프분의 비위를 잘 맞추는 건지 깔깔소리가 들렸다.

그 후 장모와 나는 말없이 설거지만 했다. 보통 남편이 집에 여후배 둘을 데리고 오는걸 받아주는 아녀자들의 심리는 어떤걸까? 너 죽고 나 죽자거나 아님 니 년 어디 면상이라도 보자하는 심리가 깔린걸까. 가뜩이나 동료의 살인사건으로 경찰에게서 전화도 오는데 이런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건가?

그의 집은 2층 주택이었기에 구경시켜주겠다는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1층을 바라봤다. 거실에 서 있던 여후배님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보라색 니트에 H라인 스커트차림. 검은 생머리를 옆으로 곱게 넘긴 얼굴. 하얗고 단아한 상. 그런데. 어디선가 본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널 어디서 본걸까. 갑자기 눈이 마주친 그 아이가 입꼬리를 잔뜩 찢으며 활짝 웃는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꼬리만 찢으며 웃는 모습이. 아.... 그때.

화장실에서 마주쳤던거 같다. 불과 몇 주전. 그날 즈음 동료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 그 아이와 같이 화장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던것 같다. 립스틱을 바르고 입꼬리만 잔뜩 추켜올리며 웃던 기분나쁜 애. 눈은 크게 정색하는 눈을 뜨고 입에 잔뜩 힘을 주고 찢으며 웃는 여자라 기억에 남은것 같다. 혹시 니가... 죽인거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단을 걷다가 넘어질뻔 했다. 저 미소의 뜻은 뭐지?

그리고 나서 2층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아까전 그 아이가 또 생각났다. 왜 회사에서 본 적이 없는 걸까. 그때 같이 화장실을 썼던 걸 보면 같은 층에서 일하는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여자의 직감이랄까. 팔에 소름이 돋는게 느껴졌다. 저 여자애를 피해야 될 것 같다. 단톡방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져 집에서 나왔을때는 달도 있고 별도 있었다. 그 후배와 나는 사는 곳이 반대방향이라 각자 갈길을 갔다. 생각해보니 그자식, 데리고 올때는 각별히 챙기며 데리고 오더니 보낼때는 태워주지도 않고 보내버리네. 되짚으며 생각하니 또 기분상한다. 어디서 기분나쁜 애를 데리고 와서는 집들이까지 하고. 나사 빠진 놈. 이런 생각을 하며 카톡을 켜서 단톡방을 나왔다.

그리고 계절이 한번 바뀌었다. 살인용의자는 잡히지 않았다. 회사안에서 우리 무리는 다시 같이 다니게 되었고 사람들도 그 사건은 서서히 잊는거 같았다. 어느날 같이 밥을 먹다가 언니가 누군가를 불렀다. 누구지? 뒤돌아보니 그 여후배가 내앞으로 걸어온다. "얘, 앞으로 우리랑 같이 다닐꺼야. 인사해" 무슨 조직에 들어온 신입이 자기소개하며 신고하듯이 여자들이 빙 둘러 서있고 그 여자애는 떨지도 않고 능청스럽게 고개숙여 인사하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한다. 아..... 얘를 또 만나네? 내가 살짝 눈을 찌푸리자 그걸 알아챈 그 애가 또 싱긋웃는다. 입꼬리만 찢고 눈은 그대로. 여전하네. 가식적이야. 눈 근육이 고장난거야 뭐야.

그 집들이 이후로 그녀석과도 연락을 끊었기 때문에 이 얘가 걔랑 뭘 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왠지 잤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유부남이랑 놀고 먹는거 회사에 소문 쫙 나면 개쪽이란걸 알텐데도 아주 당당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각자들 대화하는걸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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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전 리플 개새때문에 손절하고 쌍욕하다가 마음의 안식을 찾아 내고향 카드캡터 체리를 정주행중에 잠들었다. 그러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여주인공인 나는 내로남불 성격이지만 끝에 가서는 이성적이라는 점이 맘에든다. 이 꿈은 부분부분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하나로 짜맞춰 다시 각색한 글이고, 내가 맘에 둔 남자가 유부라는것도 꿈 중반부에 그의 집을 방문할때쯤 깨달았다. 그 유부에게 짜증이 치미는 점도 현실적이었음. 가서 싸다구를 때리고 싶었는데 나는 왜 좋아함? 그리고 층계를 오르며 눈이 마주친 여후배가 살인자라는것도 그때 직감으로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꾼 이꿈은 그 여후배와의 조우로 끝나지만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 상상에 맡긴다. 아마도 나라면? 가방엔 전기충격기를 꼭 소지하고 다닐테얌. 이직도 좀 알아보궁. 아이무셔워.

꿈 중반부에 그 화장실에서 후배와 마주치는 씬은 사실 늦은 밤이었다. 복도도 어둡고 화장실은 어째선지 불도 안들어왔었음. 그와중에 거울보며 화장을 내가 고치고 있었고 그 여후배가 달빛을 받아 섬뜩한 와중에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던터라 기억에 강하게 남은것임. 글에서는 뺐다. 왠지 그 여자애. 귀신이었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럼 그 유부는 처녀귀신도 꼬시는 이 시대 최고의 작업남쯤 되는건가요?ㅋㅋ 아이무셔. 그 여자애 발이 있는지 확인할껄!

아무튼 크리스마스의 악몽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메리 크리수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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