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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참새

kkiihhii 2020. 7. 31. 00:03

한 달 정도 전에 밤 산책을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누워있는 참새를 보았다. 순간 너무 놀라 숨이 붙었는지 한참을 쪼그려앉아서 쳐다보았다. 한쪽 날개가 누가 분지른 것처럼 꺾여있었다. 살짝이지만 숨이 붙어있었다. 시커먼 나무 그림자 아래 있었기에 자칫 멀리서 보면 누가 먹고 버린 과자봉지나 큰 나뭇잎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항상 그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었지 잠깐씩 나뭇가지나 길가에 살포시 앉았다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 십상이라 실제 모습을 이렇게 오래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걸 경비 아저씨에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필 내가 사는 아파트도 아닌 곳이었다.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내버려 두면 길고양이의 먹이가 되니 굳이 살리겠다고 병원에 가도 어차피 날개가 꺾인 새는 이제 날아오르기 힘들다는 글을 읽었다. 치료해 줄 생각을 해봐도 영유아 한 명과 유아 한 명이 이 새를 어떻게 할지 눈에 선하다. 나머지 한쪽 날개마저도 온전치 못하겠지.

길고양이의....... 먹이... 먹이? 먹는다니. 너무 작아서 손바닥 안에 다 들어올 것 같은데 이걸 먹는다니. 매번 통닭을 먹으면서도 살아있는 닭과 마주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닭이라는 건 동물원에서도 좀처럼 없었다. 너무나 흔해서? 그런데 참새는? 참새는 매일 짹짹 거리는 새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자신의 운명을 내맡긴 생명체를 보자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다.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야 해봤지만 그걸 살리는 법은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키우던 강아지들도 학교가 끝난 어느 날이면 다시 집에서 언제 있었냐는 듯 아빠에 의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아이는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인간과 친숙한 개나 고양이들도 동물 병원이라는 곳에 가는 걸 아는데. 새는 무슨 병원에 가야 하는 거지. 평소에도 얼토당토않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이럴 때는 딱 이 순간에 중요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애꿎은 스마트폰을 두드리다 이런 일상의 쇼크에 대해 편히 얘기할 수 있는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그 새를 동정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네가 걷던 걸음을 계속 가라고 그 사람이 말해줬다. 하지만 새가...라고 계속 웅얼대자 썩 좋은 상황도 아닌데 계속 있어봤자 기분만 상한다. 굳이 너 말고도 이미 다른 사람들도 봤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 그냥 지나친 거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다들 그냥 아프리카 초원의 약육강식처럼 도시 속에 살던 새라는 동물의 생과 사에 크게 감정이입 없이 순리대로 목적지를 향해 지나쳤단 거구나. 순간 회사 입사하고 가장 곤욕스러웠던 순간이 생각났다.

나는 햄버거 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이 밀려온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단체로 그걸 먹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때면 잔인한 인간, 야만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궁시렁대며 감자튀김만 집어먹었다. 곧 그것도 1년이 안되어 반강제적으로 굶주림에 의해 싹 개선되었지만. 가끔 사람들이 들끓는 식당 안에서 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웃으며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소름이 끼쳤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햄버거의 패티는 머리로 만들어진다는 얘길 듣고 그걸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이 나아져서 새우버거를 정복하고 치킨버거까지는 다가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역시 돼지와 소가 들어가는 햄버거는 그 냄새부터가 속을 뒤집는다. 미국에서 안 태어나길 잘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쭈그렸던 무릎을 펴고 다시 한번 참새를 보며 아무것도 못해주는데도 그래서 더 미안함이 밀려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내내 전화로 참새 얘기만 했다. 그 참새 기분은 비참하겠지. 그날은 잠들기 직전까지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죽음을 방관하는 죄도 엄연히 살인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 살인인가. 나도 그 참새의 죽음에 한몫했다고 생각하니 더 미안해진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참새 한 마리에 어쩔 줄 모르는 바보네. 나에게는 남들과 다를 용기가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참새를 생각하니 참. 내가 보잘것없어진다. 참새야 ㅠㅠㅠㅠㅠ미안ㅠ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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