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시작은 우울했지만 그 끝은 🌎

kkiihhii 2021. 12. 8. 02:38





우울하다

내가 울고 싶을때 마다 듣는 노래가 있다. 우수의 <습관>이라는 곡인데 왠지 모르게 곡조도 우울하고 목소리도 우울해서 울기에 딱인 노래다. 일단 이 노래가 '최근 많이 재생된 노래' 리스트 상단에 올라가 있으면 내가 최근 많이 우울했구나 하는걸 알 수 있다. 몇 시간이고 들으면서 눈물샘 펑펑 다 써야함.

이 노래의 시초는 별거 없는데. 22살 즈음에 같이 일하던 동기들이 내 생일 파티를 해주겠다며 야간업무가 끝난 아침 7시쯤에 기숙사 공용주방에서 뜨거운 물을 부은 인스턴트 미역국을 끓여주고 전자레인지에서 방금 꺼낸 따끈한 햇반에다 전날 밤에 파리바게트에서 산 생크림 케이크에 초를 켜고 깜짝 파티를 준비해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놀라지 않았다.

되려 화를 냈던것 같다. 그걸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자꾸 눈치를 준것도, 나 몰래 속닥속닥 뭔가를 얘기하는 모습도. 좀 소외감을 느낀것 같다. 보통은 그렇게 "생일파티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랬어!"로 소외감->행복하고 감사함으로 치환되어야 하는데 나는 역시

생일이고 나발이고 나빼고 다들 뭔가를 꾸미는것 같은데 그게 뭐때문인지도 잘 알겠고, 왜 궂이 그걸 해야 하는지 의문에다가 너무도 생일전날부터 그러는게 의도가 뻔히 보여 기분이 싱숭해졌다.

차라리 속일려면 평소처럼 할 것이지. 너무 대놓고 티가 나기도 하고, 그걸 준비하며 자기들끼리 즐거워서 저기 구석가서 웃고 떠드는걸 보는 섭섭함에 그 생일파티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짐짓 모른척 했지만 22살의 연기력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사람 앞에 두고 속닥거리거나 대놓고 꼽주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1인인지라. 거기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곁들여지면 아주 나락가는거.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는게 애초에 안됐던것 같다. 그런거 있지 않은가. RPG 게임을 시작할때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은가 뭐 법사나 검사나 그런것 말이다. 나는 애초에 우울하고 자신감은 없는데 지 할말은 또 다하면서 내꺼는 잘 챙기는 설정이라 이런 유치한 연기들 앞에서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얘들아 그냥 생일축하 한마디만 던지고 제발 끝내줘. 그걸 빌미로 계속 웃고 떠들고 자기들끼리 사라지는 모습이 보이면 그게 더 빡친다고.

10년은 더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   너무도(?) 어렸고 그래서 생일 당사자만 두고 자기들끼리 자꾸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은 순수했고, 나는 우울했다.

그렇게 어찌저찌 생일상을 받고 다 같이 밥을 먹고 내일의 야간출근을 위해 헤어졌다. 각자의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데 그때의 분위기. 잊지못하겠다.

그렇게 준비된 주방에서 한참을 자기들끼리 즐겁게 뭘 준비하더니 생일이라며 노래 한곡 부르고는 자기들이 더 신나서 케익을 먹으며 또 한참을 자기들끼리 얘기하는것 같았다. 준비하면서 즐거웠나보네. 나는 건덕지만 제공한것 같은 느낌? 왜 내 생일인데 내가 더 소외되는 기분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의 내 표정은 썩소를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방에는 다른 룸메이트들이 있어서 차마 못들어가고) 이 우수의 습관이라는 곡을 틀고 한... 2시간은 운 것 같다. 당시에는 조금만 울고 말꺼라고 생각하고 잠시 이어폰을 끼고 화장실에 들어간건데 뭣 때문인지 이 노래의 신비한(?) 눈물즙짜는 중저음 목소리와 계속 반복되는 우울한 곡조, 또 지난 몇 년간의 설움까지 더해져 눈이 퉁퉁 부을때까지 운 것 같다.

그정도의 눈물량은 내 평생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하나는 타이타닉 마지막 부분에 디카프리오 물에 빠져 죽은거 보고 그날 집에 있는 티슈 다 썼던 것. 그것도 벽과 침대사이 가장자리에 콕 박혀서 광광 울었던것과 비슷했다. 여동생이 놀랐는지 엄마한테 가서 "언니가 계속 울어!!!"하던게 기억난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정확히 잰것은 아니지만 3시간은 넘게 울었다. 진심;

이것 말고도 꽤나 장시간 눈물을 흘린적이 많은데 10대때의 눈물은 그냥 소설이나 드라마에 몰입해 여주인공에 빙의되어 순수하게 울었다면, 취직하고 나서는 회사업무와 대인관계로 울었던 적이 많은데. 그때의 눈물은 약간... 독한 울음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딱 울면서 거울에 눈물 흐르는거 쳐다보면서 이를 가는 표정을 짓는 걸 상상하면 된다.

30대 결혼과 육아를 시작한 뒤에 우는 모습은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우는 법이 없었다. 마치 독한 시어머니를 만나 주방을 떠나지 못하는 장손 며느리처럼 손으로는 뭔가를 계속 치우거나 정리하면서 무표정으로 눈물을 한움큼씩 흘린것 같다. 그렇게 울다보면 일단은 얼굴선을 따라 눈물이 흐르고 그게 떨어져 앞섶을 적시는데 그럴때 창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면 언뜻 울지 않는 듯 보인다. 걸어가서 가까이에서 보면 우는걸 볼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은 평소처럼 뭔가를 얘기하거나 걸어오다가 내 곁에 서 있을때, 알아챌때도 있고 못 알아챌때도 있다. 그럴때는 나에게 말을 걸어보다가 알게 된다. 짧고 간결하게 대답한다. 뭐, 어, 아니, 응 이정도. 발견하면 흠칫 놀라면서 뭐냐고 내가 또 울렸냐고 이런 말을 하며 다가온다. 따지고보면 인생을 두조각 내거나, 가정이 파괴된다던가, 병에 걸렸다던가 혹은 천지개벽. 그 정도의 일로 우는 법은 없었다.

사실 그런 일은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런걸 제외하면 나를 울게 하는것은 표정과 말투였다. 짐짓 이런 글을 적으면 '그럼 도대체 어떻게 표정을 지으란 거야?'라고 생각할 남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냥 눈을 보면 안다. 당신이 이병헌 정도의 정통연기파 배우가 아니라면 표정으로, 행동으로, 사소한 말속에서 우리는 꽤나 많은 것을 찾아낼수 있다.

잠깐이지만 나를 싫어한다던가 비난할때의 상대의 눈을 쳐다보라.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향해 욕을 하는것 같다. 죄인이 되었다가, 우울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어째서 그렇게 쳐다보는건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적이 있다. 나는 인간이랑 살면 안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적이 있다.

희노애락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감정이있고 언젠가는 터지듯 분노를 표출하는 날이 올것이다. 그럴때마다 그게 지인이든 회사동료든 남편이든 딸이든 일단은 그 눈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이런 상황도 싫고. 애초에 그런 상황을 안 만들면 되는 건데. 책으로 세상을 배우던 10대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그전만 못하다. 남을 배려하는 법은 나날이 사라지는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보면 천하에 이기적인 년이 되어 있다.

내가 괜찮다고 남이 괜찮은건 아닌데. 역지사지 그거 참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평소에 인사도 잘하고 싹싹하게 말도 잘해서 점수를 좀 많이 땄다면 괜찮았을텐데. 우울한대로, 생긴대로 행동해버려서 문제다.

그전까지는 내가 표현을 삼가하고, 말수를 줄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숱한 시행착오 끝에 뭔가를 깨달았다. 말실수를 한다고 말을 안 하는것은 언젠가 한두번 말을 할때 실수하는걸 막을 수 없지만, 자주 말하며 대화 스킬을 늘리고 타인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자주 부딪히다보면 싹싹해지는 거 였다. 문제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아서 였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그 눈물을 흘리던 생일날 나는 말했어야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경멸의 눈을 하고 쳐다보는 타인에게 나는 말을 했어야 했다. 얼굴은 알지만 자주 얘기하지 않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사람들에게도 어쩌면 말을 했어야 했을까.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클꺼라고 생각하던 내 딸들에게도.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에게도. 계속 말을 했어야 했다. 내가 어떤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말이다. 결국 소통의 단절은 말을 하지 않아서였고, 내 우울감의 근원도 말을 아껴서 그럴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하자는건 아니지만 적당한 이야기는 주고 받는 그런 연습을 앞으로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매일 매일 지인들과 만나고 어디에 참석하느라 스팀잇에도 못 들어와 로그인한지 6개월, 1년이 지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우울한 일기를 zz태그 하나 달고 싸지르는 내가 사라져 있었으면 좋겠고, 카톡 프사에도 내 얼굴을 걸고, 아이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같이 잠들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결국 3시간 자고 일어났지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놀러다니고 싶다. 맛있는것도 먹고 더 건강해지고, 친구도 지인도 많았으면 좋겠다. 글쓰는것도 까먹고 내가 찡여사라는 것도 까먹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 곳을 떠나는 날까지. 우울을 금방 다시 즐거움으로 바꾸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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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새벽에 쓰는 일기.
오늘도 글을 쓰면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감사한 글쓰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