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아이들과 함께 2주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 제인 에어와 비밀의 화원 두 권을 빌렸다.
어른 도서관으로 가려니 시간이 아까워 어린이 도서관 안에서 어른이 볼 수 있는것을 고르다보니...어랏? 되려 건강하고, 순수하며, 멋진 고전 시리즈물을 접하는 계기가 되어버림(최근에 김영하 단편소설집에서 어림짐작으로 스무명 즈음의 죽음을 보았던 지라... 이런 순수고전이 참으로 아름답다 느껴진듯)
책 반납 이틀전에 오디오북이었던 <불편한 편의점>을 모두 다 듣고 다음것을 뭘 들어야하나 고민하다 귀도 쉬어줄겸 눈으로 책읽기로 하려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종이책으로 눈을 돌렸다.
읽지 않고 반납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반납 이틀전. 제인에어보다는 다소 얇은 책인 <비밀의 화원>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얇은게 400페이지임. 제인에어 어림잡아도 600~700페이지는 될듯;; )
우선은 두꺼운 책표지에 연한 수채화 채색의 풋풋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초면. 프렌시스 호즈슨 버넷. 그러나 딱 한장 펼쳐보자마자 나의 큰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장 70권의 소설을 쓴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소공녀를 쓴 작가와 같다니! 아주 큰 실례. (죄송합니다... 책린이라...)
요즘 책을 읽기전에 꼭 작가의 약력같은걸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게 올바른 독서의 방향인건지. 이 어린이 고전문학전집도 초반부에 작가의 생애가 상세히 적혀있다. 너무 좋다. 이런 친절. 얼마만인지. 마치 우리가 전시회를 가더라도 입구 초반에 작가의 생애가 작품 이해를 위해 있듯이 말이다.
거기다 삽화가에 대한 이야기와 번역가에 대한 짧은 설명까지. 어린이 고전시리즈는 이토록 친절한 것인가! 빠져들것 같아. 이런 매너책! 나의 어린시절에 이런 고전전집이 함께 였다면 더욱 환상적이었을 텐데. 갑자기 소장가치 올라와서 살펴보니 이미 20년전에 출판된 책이다. 와오. 지금은 더욱 좋은 출판사에서 더 멋진 고전책들이 전집으로 있겠지?
또 책내용은 이야기 안하고 삼천포로 샜다. 이미 초반부 상세한 작가와 삽화가 설명으로 나의 마음을 뒤흔듯 시공주니어 출판사의 <비밀의 화원> 책에는 급기야 읽는 이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듯(!) 등장인물 소개까지 있다;;; 와 너무 친절해. 나 어린이할래. 응애.
상세하게 주인공 얼굴그림과 그에 대한 인물소개가 있었고 이미 그것만 읽어도 대략의 줄거리가 가늠이 될 지경. 하... 황홀해;; 어린이들.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니... 나란 여자 사람이름 못 외우는 여잔데... 덕분에 이 소설을 읽으며 단 한번도 인물을 헷갈리지 않았다. (간간히 그 시대의 인물지칭 같은 것을 써서 적는것은 좀 헷갈렸으나 이름 나오는 내용은 완벽하게 헷갈리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책에 히어로(ㅋㅋㅋ)인 붉은가슴울새를 사람인것 마냥 새 그림 넣어놓고 주요등장인물에 설명해놔서 나라는 여자는 또 심쿵... 이 새에 대한 책 내용이 나올때마다 참으로 귀여움... 가슴이 빨간벨벳가죽같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듯 짹짹 거리며 주변을 통통 튀어다니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참새덕후들. 다들 가슴 조여들 준비하시라...
마지막 후반부에는 이 참새님의 부인참새분(ㅋㅋㅋ) 아 미안. 붉은가슴울새님!의 부인분이 등장인물들 왔다갔다 거리는걸 지켜보며 인간군상에 해탈한 어떤 스님의 속내같은 나레이션이 깔리는데 참으로 이 참새..아니 붉은가슴울새는 매력터지는 새인것. 읽을때마다 참으로 가소롭게(?) 귀엽고 손에 올려서 쓰다듬고 싶은 욕구 뿜뿜하게 함.
못참겠네; 소설 읽을때도 안 찾아봤는데 리뷰를 혹시라도 읽을 사람을 위해 이미지를 좀 찾아서 붙여놔야 겠다.

아니 ㅋㅋㅋ누가 풍선불었냐고 ㅋㅋ 너무 귀엽잖아 ㅠㅠ 이 새와 최초로 소통한 그집 정원사인 (글쓰는 중에 벌써 등장인물 잊음;) 벤씨 (뒷이름..죄송)는 녀석에게 이런 말을 함.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듣고 또 영리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고.
아무튼 이 착한 붉은새는 여주인공인 메리에게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길을 알려준다. 그녀는 그곳을 들락거리며 병약미에서 건강미로 다시금 환골탈퇴하며, 그와 더불어 '온세상 동물은 다 내 친구'라는 디콘과 짱절친이 됨. 거기다 한명 더 가세해서 (매번 강조되는) 방이 100개.. 무려! 100개나 되는 으리으리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또 한명의 병약한 주인집 아들래미 콜린을 건강하게 만들어줌.
여기서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신성한 바람과 아름다운 꽃들이 잔뜩 우거진 화원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읽을 때마다 어린시절 새벽에 일어나면 동이 트는 하늘과 그 공기의 향기를 맡으러 부엌에 난 창문을 열어젖히고 말없이 바라보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어린아이에게 필요한건 어쩌면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는 드넓은 황무지같은 평야와 꽃과 나무. 바람. 그것만 있어도 아이들은 건강해지는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 꼬마주인공들이 그 멋진 화원을 제손으로 가꾸며 나날이 건강해지고 활기차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데 자꾸만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6살에도 부모와 동행하지 않고 집 앞에서 놀거나 혼자서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는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6살적부터 동네를 쏘다니며 비슷한 또래들과 날씨만 좋으면 약속이라도 한듯이 다들 모여서 무리지어 돌과 나무작대기만 가지고도 한참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첫째도 그때의 나와 같은 6살이지만 너무도 다르게 크는 것 같아 좀 안쓰럽다. 놀이터에는 흙도 없고, 이제는 골목골목에 차가 없는 곳이 없으며, 대형 아파트 단지가 많이 생겼지만 오히려 내 옆집에 몇 살 아이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그때는 내 옆집 앞집 골목길집 부모들끼리 다들 친하고 거기 아이들도 자연스레 친해서 다들 가족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다. 지금도 놀이터에 가면 아는 얼굴의 친구들은 있지만 그전처럼 살가운 그런 관계는 아닌것 같아 씁쓸하다. 나조차도 낯선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어떤 행동을 취하면 긴장을 하고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멋진 자연환경과 그 속에 또래 세친구가 흙을 파고, 꽃씨를 심으며, 정원을 제 힘으로 가꾸는 모습이 참으로 이상적이라고 하겠다. 엄마들이 원하던 자연속에 크는 내 딸의 모습이 바로 이런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틀간 읽다 자고 읽다 자고 수차례 반복하며 오늘 낮에서야 다 읽어내려간 이 책을 반납하러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주인공 메리와 사촌인 콜린은 10살, 거기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황무지에 사는 디콘은 13살. 아마도 한국이었다면 학교에 갈 나이일 것이다. 이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뛰쳐나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퍼뜩 듣고 달려와 점심을 먹고 또 밖으로 달려나가 한참을 놀다가 어둑어둑 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보낸다.
심지어 메리가 입양된 그 집의 주인인 아치볼드 크레이븐이라는 집주인은 아들이 태어났을 함께 가꾸던 아름다운 장미정원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불의의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후, 그 정원을 10년간 잠궈놓고 열쇠도 어린가 흙속에 파묻어버렸으며 아들조차도 볼때마다 사랑하던 아름다운 부인이 생각난다며 등한시한다.
자신은 곱등이인데 내 아들도 곧 자신을 따라 등이 굽어버릴꺼라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모습(요즘의 나 자신 같아서 많이 슬펐다...) 그 걱정의 말들을 어릴적부터 듣고 자라온 아들인 콜린은 멀쩡한 몸을 가진 아이였음에도 시녀들과 그를 보는 간호사, 의사까지 모두들 자신이 죽을꺼라고 수근거리는 것 같다며 매일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툭하면 히스테리를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세상밖으로는 한발자국도 안나가는 폐인같은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 두 부자가 소설의 후반부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원을 거니는 삽화를 보자 나조차도 감동을 할 지경이었다. 역시 인간은 자연속에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싶기도 했고. 거기서 까마귀, 새끼 염소, 다람쥐, 아기 여우를 데리고 다니는 동물 사랑 만렙인 디콘의 어머니인 수잔 소비어 부인이 아이들을 염려하며 주변인들에게 하는 말들 속에서 "엄마라면 아이들을 위해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가냘팠던 고아인 메리는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많이 먹고 활동적으로 변해 포동포동 살이 찌고, 남자 아이도 근력 운동도 하고(여기서 어떤 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짐작으로는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같은것을 하지 않았을까? ;;;) 여기저기 근육이 붙고 눈동자가 맑아졌다는 표현이 엄마인 나를 감동하게했다.
우리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ㅠㅠ) 처음으로 몇 달전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텃밭을 무료로 재공한다고 했을때 신청하자고 하던 남편을 만류하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워졌다. 이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아이들에게 흙을 퍼고, 꽃씨를 심고, 잡초뽑는 일 같은것을 가르쳐볼 생각을 해봤을텐데. 지나고보니 이번에 이사갈 집도 단지 걸가 가깝다는 이유로 아파트 단지안에 차가 다니는 곳으로 선택했는데 그 옆에 단지안에 차가 다니지 않는 아파트로 선택할껄 후회가 밀려왔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달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한거였어 ㅠㅠ)... 아닌가. 그런 드 넓은 대저택과 토지를 소유했어야 하는것인가. 마치 이 기분은 빨간머리 앤을 읽었을 때에 자연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것. 늙으면 다들 고향으로, 시골로 내려가는 이유도 어찌보면 건강=흙과 나무 이런 것과도 밀접할 것 같다. 맨발로 흙을 밟아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적다보니 참, 아이의 보육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과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그러움이 그렇게 그립다. 나무가 많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그 방이 100개이고 드넓은 화원이 펼쳐진 풍경이 그려진다. 작년에 <시크릿 가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나왔다고 하니 시간이 된다면 찾아서 보고 싶다.
오늘의 그 여운에 힘입어 이번에는 같은 출판사 시리즈물에서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모험> 두 권을 빌렸다. 또 얼마나 재밌을지... 벌써 작가 소개만 읽어도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