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을 나의 검정 체크 난방에게
우우 드디어 블투 키보드 두번째 개시로군요. 흥미로와. 뭔가 새로운걸 장만한다는건 가슴벅찬 일 같음.
옷이나 물건 같은 것조차도 잘 안사는 타입인데 최근에는 회사복장이 자율화되면서 쇼핑에 살짝 발을 담가 봤네요. 그래서 출근전에 새로산 옷을 입을때 마다 이걸 입고 길을 걷는 멋진 나를 상상하며 자신감 뿜뿜해짐. 이 키보드 또한 새키보드이기에 나는 왠지... 지금 자신감이 뿜뿜.
헿헿 또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는군. 오늘은 정말 정말 할 말이 잔뜩~ 있으므로 번호 일기 써봅시다. 부디 3번까지 가길 ㅋㅋㅋ 1번 번호쓰고 3천자 각 나오나요? ㅋㅋㅋ 여러가지 수다를 떨고 가보자고! 최근 너무 나태해져서 일기조차도 미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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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었죠. 어제. 웃긴 에피소드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아 봅시다.
가장 우당탕탕 요절복통했던 일은?
시댁에서 몇 시간동안의 (강행군) 전부치기 임무를 완료한 나라는 며느리는 작은 방에 대자로 뻗어서 한잠 자고 있었음. 이것은 꿀잠이요. 그 누구도 막지 못해... 자는 사이 언뜻 남편도 들어와 제가 전부치는 사이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서 죽노동(?)을 했다는 알리바이(?)를 데며 대자로 누우심.
우리 둘은 정신없이 잤음 ㅋㅋㅋ 아마도 나는 많이 피곤했으니 코도 골았겠거니... 남편은 그날도 특유의 잠버릇대로 잤음. 이불을 잔뜩 끌어모아 가슴앞에 뭉쳐서 죽부인처럼 만든다음 다리사이에 끼우고 옆으로 새우잠 자는 전용자세로 취침중이었음.
마치 갓난아기가 태어나 100일 즈음 막 뒤집기 할적에 엄마가 아이들 잘못 뒤집을까 걱정하여 커다란 베게를 다리사이에 딱 끼워준 그런 자세. 뒤집기 방지용 쿠션을 쓰는 성인남자애기 같음. 여름에 죽부인 하나 넣어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또 본인은 그러면 배 시렵다고 싫어함.
이 특유의 자세로 미루어 볼때 부인을 끌어안고 자는 것도 가능한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예 불가능. 이불의 푹신하고 감싸는 느낌을 사람이 줄수는 없다는 그의 발언. 어쩌면 그는 푸짐하고 작은 여성과 결혼했어야 했나... 한번씩 안타까울 때도 있음. 그러게 왜 본인보다 더 큰 쭉쨍이 같은 여잘 만나서 ㅋㅋㅋ 무슨 독수공방 홀애비 같은 자세로 연애때부터 쭈욱 8년째 저 자세임. 한번씩 안쓰러울때도 있음. 에혀 ㅋㅋㅋ
그날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ㅋㅋ독수공방 홀애비 자세로 자는 남편의 등뒤로 시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부르심. 남편에게 테이프 좀 사오라고 심부름 시킴. 설명을 좀 보태자면 그 집에는 아주벗님과 형님도 계셨는데 막내아들인 남편에게 심부름 시킴. 항상 그럼. ㅋㅋ 막내라서 잔심부름은 남편 몫임.
근데 남편 귀찮아함. 두서너번 물었는데 남편 대답도 안함. 어금니 악물고 내가 가겠다고 함. 일어나는데 무릎이 시큰거리네. 캬. 잘사는 집들은 제사 안지내고 비행기 탄다던데 핳핳핳. 내 복이 여기까진가. 아 안구에 습기가 ㅋㅋ 테이프를 사라며 무려 만원이나 주심. 남은 돈은... 씁... 그러나 나는 며느리니까 진실되게 돌려주자고 마음먹음.
아까 젤 첫줄에 적었듯이 가장 최근 쇼핑해서 득템한 검은색에 버건디색 줄무늬가 드문드문 있는 체크남방을 전부치던 그 시장통 롱치마위에 입음. 안에 입은 반팔은 아이들 옷만 챙기고 내 옷은 못챙겨와서 시어머니에게 빌려입은 특유의 수려한 가짜 보석이 촘촘히 박힌 시장통 펄럭이 재질 럭셔리 반팔 티셔츠였음. 누가 볼새라 난방 단추 전부 잠금 ㅋㅋㅋ 아무튼 집문을 나섰음.
운동화는 올해 나온 뉴발 베이지색 운동화인데 치마는 만원도 안할 시장통 롱치마 그리고 그 안에 화려한 은하수를 수놓은 펄럭펄럭 재질 반팔티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최근 모브랜드 신상 난방, 붕뜬 머리와 한 손에는 만원 그리고 지방 소도시에서 유행중인 크로스로 매는 두꺼운 휴대폰 줄을 매고 어머니 아파트에서 10분정도 떨어진 007마트로 걸어가는 내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멋진것 같았음 ㅋㅋㅋ특히 롱치마의 쨍한 노란색을 베이스로 수십가지 온갖 천을 덧대어 붙인듯한 희한한 패턴들이 부조화에 큰 일등공신이었음. 양말도 키티중목양말 ㅋㅋ
걷다가 쇼윈도에 언뜻 통유리로 비치는 내 전신샷은 너무나 기괴하여 ㅋㅋㅋ 이대로 서울가서 밋업하는 것도 괜찮을것 같다고 생각함. 뭐랄까. 찌든 워킹맘을 패션으로 승화시켰달까. 앙드레 김 선생님. 보고 계신가요. 이 아름다운 조화를 보십쇼. ㅋㅋㅋ 흠, 그렇지만 역시 장신의 내가 이토록 이 패션을 잘 소화시켰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지.
여러가지 세계 패션 흐름시장에 던질 새로운 화두와 곧 쏟아질 또 하나의 유행에 대해 짐짓 깊은 생각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갔음. 오늘도 내가 경주 시장통을 찢었구만. (시댁은 경주임) 패션의 선두주자 답게 당당한 워킹으로 007마트에 들어선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돌려 테이프가 쌓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코너로 우아하게 걸어갔음. 역시나 있군. 어멋님은 유독 투명 테이프 보다는 누리끼리한 황색 테이프를 애끼시는 지라, 당장에 1개로는 성에 안 차실것 같아 2개를 한손에 하나씩 들고 계산대로 워킹함.
한개당 오천원이면 곤란한데... 이런 생각하는데 1개당 천원이라는 믿을수 없는 가격이었고 나는 만원을 주었음. 팔천원을 거슬러 주는 계산대에 처자를 보아하니 위아래 검은색 아이다스 츄리닝인데 보기드문 숏컷머리임. 언뜻 미소년 스럽지만, 아니 너는 분명 여자다. 너, 너도 경주 시장바닥을 찢을 자격이 충분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거스름 돈을 받고 마트를 나옴. (지금 글쓰다 생각해보니 명절 당일에도 자연스러운 마트 영업 ㅋㅋ오잉 ㅋㅋ)
마침 바로 앞에 요즘은 보기 드문 모나미 패션(위에는 흰색 셔츠 같은 것을 입었고, 아래는 타이트한 검정 슬랙스를 입은 패션으로 일명 모나미 패션이라함) 커플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음. 참으로 느릿느릿 걷는 중이었는데 왠지... 저 커플을 앞서가면 분명 뒤에서 나의 2021년 워킹맘 패션에 대해 감탄 할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추측을 함.
걸음속도를 줄이고 그냥 그 커플 뒤를 천천히 따라 가기로 결정함. 그들은 이 곳에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닌지 한참을 기웃거리면서 걸어갔음. 양손에 먹을 것을 조금씩 산 것으로 보아 친척집에 온 사촌인가 싶기도 하고.
그들 뒤를 몇 분 정도 따라가던 그때 서서히 아파트 후문이 보임. 거기에는 담배라도 피려고 나온건지 멧돼지 같은 상체뚱뚱 체형에 아래는 밀리터리 반바지룩의 남자가 있었음. 억지로 껴입은 것 같은 하얀 런닝 테두리가 목주변 살위로 보이고 그걸 꽉 누르고 있는 타이트한 검정 긴팔티. 앵그리 버드에 나오는 빨간색 화난 새 같은 표정의 마스크남. 근데... 왠지 길목에 서서 걸어오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음.
엮이면 피볼것 같은 느낌이라 감히 쳐다보지도 않고 재빠르게 그 곁을 지날즈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걸어갔음. 그런데 그 남자가 내 팔목을 홱 잡더니 나를 자기쪽으로 돌려세움. 너무 놀라서 어버버 표정으로 있었음. 여보! 소리에 깜짝 놀람. ㅋㅋㅋ 아씨ㅂ 남편이었음. ㅋㅋㅋ 하... 진짜 등에 무슨 문신 있을 것같은 괴팍한 아저씨인줄... 목소리 듣고 남편인걸 앎. ㅋㅋㅋ개쫄았네 #$%^&*($%^라고 욕을 시전함. 그 소리를 듣고 모나미 커플 빵터짐.
아마도 우리 부부의 믿을 수 없는 패션센스는 그들에게 두고두고 웃음 거리 였을 것. 그리고 아름다운 테이프 심부름은 그렇게 뻘쭘히 모나미 커플을 의식해 다른 쪽 길로 우리 부부가 걸어가게 되면서 일단락 함. 내가 왜 갑자기 다른 길로 걷냐고 묻자, 그냥 걸으라고 남편이 말함. ㅋㅋ 그래 나도 다른 길로 가고 싶었어 왠지 ㅋㅋㅋ
아무튼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이 재차 물어봄. 정말 자신인줄 몰랐느냐고. 왜 고개를 돌리냐고. 기분 나빴다고 함. 그런 풍채로 쏘아보는 당신을 보는 내 마음은 ㅋㅋㅋㅋㅋ오돌오돌오돌뼈 ㅋㅋㅋ 무섭.... 나는 진실되게 자백함. 20대에 해병대간걸 평생의 업적으로 여기며 반평생을 밀리터리 덕후로 지내는 근육과 지방이 적절이 낀 아재가 매섭게 쳐다보기에 상종하기 싫어 피했다고 인실직고 얘기함. 남편 빵터짐. ㅋㅋㅋ 자기가 그렇게 무서웠냐고. 녜녜. 무섭습니돵. 남편은 심부름 간 내가 걱정되어서 뒤따라 나왔다고 함. 스윗하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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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안타까운 얘길 하자면 그래서 결국 그날 구미로 내려오는 짐을 싸는 중에 007마트를 함께 여행한 검은 남방을 경주에 두고 옴. 흐응. 아쉽. 지금이 한창 입을 시기인데 ㅠㅠ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택배로 내 남방만 부치라고 말해볼까?하고 물었지만 그건 ㄴㄴ해. 안될 일이지. 그냥 내년 설날에 가지러가던지 연말에... 가지러 가자. 나에게는 다른 남방도 있써! (라고 힘차게 장롱을 열어 젖힌 나는 절망과 좌절ㅋㅋㅋ) 왠지 그 남방만이 내 패션에 방점이랄까.... 그.... ㅋㅋㅋ 나의 중성적인 매력을 어필할 수 있게 해준달까... 좋은 핏이었지... 참 좋은 남방이었다. 니 녀석.... 잘가.......
다른 그어떤 난방도 고녀석을 대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씁쓸해 함. 그렇다고 같은 걸 2개 사는건 왠지 과소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걸 안 입는다는 사실은 왠지 조금... 슬퍼진달까. 뭐냥 나 그 난방... 짝사랑 하고 있었던거야???? ㅠㅠ 이제서야 깨닫는 나의 감정. 내 진실된 난방 사랑. ㅋㅋㅋ 뭐야. 너무 슬프잖아. 우리 이렇게 헤어지는거야??? 흐엉 나 약간 난방성애자인듯. ㅇㅇ 예쁜무늬 지나칠수 없어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검정 체크 난방 두고 온거 생각하니 글이 안 써져요 . 우리 이렇게 헤어져 ? ㅠㅠ 그냥 하나 똑같은걸로 새로 사야할 거 같음 ㅋㅋㅋㅋㅋ미쳐 ㅋㅋㅋㅋ 라지 사이즈 품절이면 어떻하지 벌써부터 걱정돼... 이러면서 일기 다쓰면 그냥 잠잘듯 ㅋㅋㅋ 난 원래 그래 ㅋㅋ 호들갑은... 아 근데 또 슬프네... 경주를 지키고 있을 나의 검은 난방아 내가 보고 싶지 않니? 우린 잘 맞았잖아ㅠㅠㅠ지금이라도 나에게 와준다면... 잘 입어줄 자신 있오...ㅠ 너무 슬퍼요 ㅠㅠ 난방이 지금 주인을 잃은 거잖음? ㅠㅠ 울고 있진 않을지... 떨고 있을까요 ㅠㅠ 헝헝 ... 낯선곳에서 잠은 잘 자는지... (터지는 INFP 울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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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귣나잇.... 나의 검은색 체크 난방도.. 나도...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일기에...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