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야
산책을 갔는데 꽃들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하얀 꽃도 분홍꽃. 보라꽃. 하나같이 예쁘지 않은 게 없어요. 우리 서로 통성명은 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야. 하고 말하고 싶어 져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무가 두 손으로 저를 감싸고 있는 게 보여요. 천천히 오디오를 들으며 걷다 보면 이 친구 저 친구 모두 저의 머리 위에 두 손을 나란히 뻗치고 있는 게 보여요. 사랑스러운 친구들.
누구 하나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것도 없이 우직하니 서서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들 잎사귀의 결도 다 달라요. 쭈뼛쭈뼛한 잎도 널찍널찍한 잎들도. 친구들의 생김새는 못생겼다거나 우울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요. 가늘고 길게 뻗은 가지가 자신에게 꼭 맞는 푸른 잎으로 감싼 옷을 입고 우아하게 서 있어요. 인간이 따로 물을 뿌려주지 않아도 빗물과 햇빛만으로 아무의 도움도 없이도 잘 살아가요. 가끔 강한 비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친구도 있지만 그런 친구들은 우리가 나서서 으쌰 으쌰 허리를 감싸줘요. 나무야.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추운 한 겨울과 비가 쏟아지는 궂은날을 뺀 그 나머지 모든 날에 귀에는 이어폰 그리고 눈에는 나무와 꽃, 하늘, 구름, 바람과 손잡고 같이 걷는 거예요. 아무리 우울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노래를 들으며 자연을 보고 걷는 시간에는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해요.
너무 힘들어할 것 없어. 내가 있잖아.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어. 하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가끔 나무들이 너무 쓸쓸해 보일 때도 있어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서 좋지만 그래서 더 슬퍼 보이는 거죠. 이 넓고 큰 세상에 항상 같은 곳만 바라보니까요.
그런데 젊은 날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고 또 봐도 결국은 이 세상. 사람 사는 곳은 저마다의 특징은 있지만 큰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오히려 요즘은 내가 자주 보고 잘 아는 물건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새로운 점을 알아낸 것이 훨씬 기분이 좋았어요.
내게 보이지 않던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거예요. 여행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과 환상, 그리고 용기를 심어줘요. 그런데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마음이 생겨나요.
껍질의 갈라짐, 높고 솟았지만 품에 안으면 두 손안에 들어오는 날렵한 몸을 가졌지만 위로 위로 쭉 뻗은 가지와 4계절마다 색색이 바뀌는 무성한 잎사귀 그리고 추운 겨울이 와도 봄을 기다리는 우직함까지. 나무와 친구가 되면 참 마음이 든든할 거예요.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 자연과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인걸요. 우리는 매일 걷고 달리면서 차에서 거리에서 나무를 봐요. 그리고 꽃도 보고 자연을 봅니다. 가장 넓고 큰 하늘도 있고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한 자연을 벗 삼아 통나무 집에서 산다는 말도 이해가 가요. 사람은 사람이 꼭 곁에 있어야 우울하지 않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식물들도 하늘도 말은 하지 않지만 살아있어요. 자연 안에 내가 있고 그래서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걸요.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걸 보여줘요. 그리고 항상 곁에 있어줘요.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에요.
우울하거나 기운이 없는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힘을 얻길 바라요.